인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나는 왜 신세가 싫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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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나는 왜 신세가 싫은가
5월 제주 여행에서 본 책, 『인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책을 읽으면서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내가 평생 거부감을 느껴온 것은 어른들의 세계 그 자체라기보다, 그 안에서 작동하는 암묵적인 예의범절과 관계 맺기의 규칙들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완전히 끝나지 않는 교환, 숫자로 정산되지 않는 부채, 관계라는 이름으로 오래 남는 신세가 있었다. 지금의 감각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지는 신부대(bride price) 같은 관습도, 인류학의 시선으로 보면 단지 낡고 이상한 풍습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것은 두 집단 사이에 오래 남는 의무와 연결을 만들고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인류 공통의 교환행위와 호혜성에 대한 것이다. 남에게 호의를 받으면 그게 상응하는 보답을 해야 한다. 맞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받은 호의에 돈을 지불하지 않는가? 하지만 예부터 어른들은 '돈이 다가 아니라'고 한다.

특히 그 호혜성이 완전하고 종결적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이미 논한 바와 같이 돈을 주고 빵 한 덩이를 사는 것의 이점은 점원의 행복과 건강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와 같은 완전하고 종결적인 교환은 보증될 수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달리 말해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종류의 교환이 있고 그 안에는 부채를 원하는 교환, 그러니까 계속 이어지는 사회적 관계 및 사회적 연결을 만들어내길 원하는 교환이 있다.
- 매슈 엥글키, 『인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자본가의 탄생』을 보면 중세 유럽의 최고 부자 야코프 푸거(Jakob Fugger)는 끊임없이 황제와 정치인들의 관계에 피곤하게 개입하여 빚을 만들고, 때로는 큰 빚을 떼이기까지 하며 자본권력을 획득하여 최초의 현대적 사업가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하고 종결적인 정산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권력자들은 끊임없이 자본이 필요했고 푸거는 역사적 상황에 따라 그들을 압박하거나 관대하게 대하였지만 결코 관계를 손절할 수 없었다. 그의 최선은 그 피로한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계속 관리하면서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알아차리기 힘들었겠지만 푸거가 한 일은 자신을 ‘꼭 필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었다.
- 그레그 스타인메츠, 『자본가의 탄생』


신세란 근원적이고 영속적인 것이다. 빚은 인류가 가진 기본적인 낙관성에 근거한다. 너가 오늘 나를 도와주면, 나도 내일 도와줄게. 세상이 그동안 더 좋아질 테니. 레버리지는 이렇게 생겨난다. 어쩌면 돈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빚이다.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갚아야 하는지 기억하고, 기록하고, 강제하는 일. 어떤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바로 그 신세의 장부가 너무 커졌을 때 등장한 장치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인류학자 겸 경제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모스의 증여론에 나오는 주장).


거의 모든 인류 문화에 공통적으로 있었던 신부대(bride price)라는 관습이나 손님을 대접하는 암묵적인 규칙들, 관계 속에 차려야 하는 예의들은 신세라는 비종결적인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불문율인 것이며, 그저 돈으로 다 치환되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교환이라고 하면 우리는 '등가적이어야만 하는 것'으로서 값을 상쇄하는 무언가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왜 신부대라는 '부채'가 결코 완전하게 지급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왜 현금이 아닌 가축으로 지급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거래 방법으로서 현금은 지나치게 명료하다. 너무 정확하고 비인격적이다.
- 매슈 엥글키, 『인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

그리고 내가 거부감을 느끼는 거의 모든 사회적 행위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나는 문명이 현대화, 자본화 되면서 완전하고 비인격적인 교환의 비율이 늘어났다는 것에 크게 안도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나는 대부분의 일에서 '신세'를 만들고 싶지 않다. 인간적 관계성을 한정하고 싶고, 가능하면 많은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고 싶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사람이 개입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더 큰 돈을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덮으며, 나 같은 사람의 유전자도 빚과 신세로 관계를 맺어온 인류 속에서 오랫동안 거부감을 느끼면서도 용케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인간이 서로에게 남기는 여백을 불편해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완전하지 않고, 종결적이지 않은 가치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인생을 사는 게 반대급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도 그런 것이다.

시골에서는 토지를 매개로 가문을 결속하는 정략결혼이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팔자가 금세 바뀔 수 있었으므로 결혼 생활을 유지하려면 혼인관계증명서보다 더 강력한 접착제가 필요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그레그 스타인메츠, 『자본가의 탄생』
늘 순환하는 사물들에 대해 아무도 그 각각의 값어치를 공개적으로 묻지 않으며, 이 교환은 상징적인 측면에서 단 몇 분일지라도 시차를 두고 행해진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이렇게 노래하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없어!"
- 매슈 엥글키, 『인류학자처럼 생각하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