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치-22와 빅퀘스천, 선택권
"물론 함정(catch)이 있지." 다네카 군의관이 대답했다. "캐치-22가 있으니까. 전투 임무를 면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누구라도 정말로 미치지는 않았어."
- 조지프 헬러, 『캐치-22』
캐치-22. 미친 사람은 비행 임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 그런데 면제를 신청한다는 것은 자기 목숨을 걱정할 만큼 제정신이라는 증거다. 따라서 면제를 신청한 사람은 미친 사람이 아니다라는 소설 속의 규정.
마침내 캐치-22를 다 보았다. 걱정하던 것만큼 재미없는 책은 아니었고, 염려하던 만큼 풍자적이긴 했다. '아니, 정말 미쳤잖아' 같은 내적 비명을 지르며 본 챕터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역시 힘들었다. 민음사 출판본에 첨부 된 비평 중 ‘중간에 100페이지를 아무렇게나 잘라버려도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잔혹한 관료주의에서 파괴되는 인간성, 마일로 마인드바인더의 행위로 표현되는 자본주의의 모순성에 대한 풍자가 그리 재밌진 않았다. 2026년은 관료주의와 자본주의의 모순을 너무 익숙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된 시대라서인지, 무엇을 풍자하는지는 선명했지만 그 풍자가 새롭거나 재미있지는 않았다. 그래도 갈려나가는 인물들을 보는 건 슬펐고 결말은 감동이 있었다.
소설 속 캐치-22의 효력은, 이 말도 안되는 규칙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집단적 환상에 근거한다는 에피소드가 여럿 나온다. 또 작가는 캐치-22를 패러디한 모순을 계속 사용한다. 전시 출격 규정이 아니더라도 인물들은 연애, 결혼, 다툼속에서도 자기모순적 딜레마를 계속 주고 받는다.
"내가 왜 미쳐?" "페르케 부오이 스포사르미.(나하고 결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요사리안은 묘한 즐거움을 느끼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가씬 내가 미쳤기 때문에 결혼을 못하겠다고 그러고, 그리고 내가 아가씨하고 결혼하고 싶어 한다고 해서 나더러 미쳤다 이거 아냐, 안 그래?" "시.(그래요.)"
- 조지프 헬러, 『캐치-22』
책을 보고 나니 캐치-22라는 단어를 정당하게 쓸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한 것 같아 후련하다. 나는 이 단어를 처음 알았을 때부터 무척 좋아하고 남용해왔다. 딜레마, 진퇴양난, 자기모순적 상황을 대충 뭉뚱그려 모두 캐치-22라고 불렀는데, 그래도 내가 이 단어를 과하게 오용하는게 이상하지 않을 만큼 인간에겐 내재된 캐치-22의 본성이 있다. 바로 자신이 갇혔다고 생각하는 것.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 우린 항상 딜레마 속에 있다. 헤겔의 비극론을 흔히 요약하듯, 비극은 옳음과 그름보다 서로 다른 두 옳음의 충돌에서 생긴다. 그래서 딜레마를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견디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지의 결정을 내리느냐가 인간의 거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가 딜레마에 있다고들 하지만, 딜레마야말로 인생 최고의 맛이다. 딜레마에서야말로 한 인간의 결정력이 드러나기 때문이고, 그 결정에 의해 놓아 버리게 된 것을 통해 오히려 한 인생의 진면목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놓아 버리는 것이 확실할수록 더 잘 싸울 수 있다. 딜레마가 없는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고, 딜레마를 피하는 인생은 비겁한 인생이며, 딜레마 속으로 뛰어드는 인생은 꼭 한 번 살아 볼 만한 인생이다.
- 이응준,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소설 『빅피쳐』로 널리 알려진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퀘스천』은 스스로 만들어낸 내적갈등에 갇힌 인간의 본성을 자전적 에세이로 담아냈다. 작가는 (작가 자신이 자초한) 이혼과정의 한가운데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아무리 끔찍한 결혼생활이라도 아주 잠깐 동안은 멋진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결혼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느끼면서도, 참고 견뎌내다 보면 어느 정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중략)
분명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있음에도 계속해서 고난을 자처하는 건 자기 파괴적 행위에 다름 아니다. 현실에 안주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체로 자기 방어적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자기 방어적인 태도는 오히려 삶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데 걸림돌이 되기 쉽다.
-더글라스 케네디, 『빅퀘스천』
고백건데 결혼생활에서 내가 끊임없이 측정하던 부당함의 저울이 너무 기울었다고 생각하면 나는 한쪽 구석에 가서, 티 내지 않고 이 책을 전자책으로 보았다 (12년 동안 이 책을 세 번 보았고, 마지막은, 사별 후 작년이다). 내가 주변에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다.
제라르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었지만 끝내 이혼하는 걸 두려워했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잘못된 결혼생활은 감정적인 스톡홀름증후군이다. 덫에 갇혀 있으면서도 그 상태를 체념적으로 받아들여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벽을 허물기만 하면 어디로든 자유롭게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너무 오래 갇혀 살아온 나머지 빠져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더글라스 케네디, 『빅퀘스천』
『빅퀘스천』을 보고 내가 찾은 것은, 스스로 만든 덫에 갇혔다는 공감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에 있는 나의 선택권, 나의 자유의지였다. 관계는 시시프스의 신화 같은 형벌이 아니다. 그것은 꼼짝달싹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인식이다. 나는, 우리는, 언제라도 서로에 대한 의무를 내려놓거나 형식을 바꿀 수 있다. 어떤 합의에 이르고, 무엇을 주고 받을지에 대한 타협만 한다면. 책임과 상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덫에 갇히지 않았다.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 지금은 비록 내가 부당함을 느끼더라도 머무르기를 선택했을 뿐이다. 물론 내일은 또 달라질 수 있다. 사랑이 나에게 선택권을 앗아가지 않았다는 걸 인식하고 살자. 내 삶의 다른 옵션들이 명징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지만,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건 나의 선택이다.
선택권
잭 슈웨거의 시장의 마법사들에 등장했던 시스템 트레이더 래리 하이트(Larry Hite)는 인터뷰이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훗날 직접 『The Rule』이라는 제목의 책을 썼다. 번역서 제목이 다소 재테크 자기계발서 같은 『부의 원칙』인 관계로 주목을 많이 받지 못한 것 같지만, 이 책만큼 선택권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책은 드물다.
인생에서든 시장에서든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일은 아주 많다. 하지만 당신은 선택을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얼마를 기꺼이 잃을지는 당신의 의지대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되돌아가보자.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 래리 하이트, 『부의 원칙』
래리 하이트는 손자들이 자신들에게 선택할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기를 바라며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는 트레이딩 뿐 아니라 인생에서 항상 첫 손실이 최고라고 한다. 그때 재빨리 빠져 나와야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첫번째 결혼에서 빠져 나오는 선택을 했고, 두번째 만남에 뛰어드는 결정을 했다. 불확실성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매몰비용 앞에서 패닉하지 않으며, 위험을 통제하는 것은 뛰어난 트레이더에게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이다.
자신이 옳다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도 그는 추세를 거슬러서 감당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리스크를 떠안았다. 왜 그랬을까? 우리 마음속에는 희망이 손해보다 더 가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나쁜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그대로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내 경험으로 볼 때 바로 이런 식으로 대다수의 부가 사라진다.
-래리 하이트, 『부의 원칙』
다시 캐치-22로 돌아가자. 딜레마에는 선택지가 있다. 다만 어느 것을 골라도 무언가를 잃는다. 캐치-22에서는 시스템이 허용하는 어떤 선택도 출구가 되지 못한다. 면제를 요구하면 제정신이므로 면제받지 못하고, 요구하지 않으면 계속 출격해야 한다. 모든 길이 같은 자리로 되돌아오도록 규칙이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시스템 안에 출구가 없다는 말과 인간에게 아무 선택도 없다는 말은 같지 않다. 내가 인생에서 캐치-22라고 느꼈던 것들도 실제로는 딜레마에 가까웠다. 머무르면 부당함을 느껴야 했고, 어느 길도 대가는 있었지만, 적어도 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머무르는 일을 선택으로 만들 수 있다.
내가 캐치-22에서 가져오고 싶은 것은 모든 함정이 환상이라는 낙관이 아니다. 시스템은 실제로 사람을 가두고, 선택에는 때로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붙는다. 다만 허용된 출구가 없다는 것과 우리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선택권이 있다는 것은 자유롭다는 뜻도, 무엇도 잃지 않는다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무엇을 잃을지를 끝내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에 더 가깝다.
요사리안은 선택한다. 리스크가 분명히 존재하는, 딜레마 속의 선택이지만, 출구가 없는 자기모순을 냉소하며 선택한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인간은 무엇을 잃을지 항상 선택할 수 있다.